당신을 깨우는 한마디/정체성 편 23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소유는 천국가는 연료이다.

버리는 사람들 3 소유는 천국까지 갈 수 있게 하는 연료일 뿐이다. 자신을 위해 쓰면 썩을 것이고 복음을 위해 쓰면 썩지 않을 것이다. 이 뚜렷한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비결을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물론 그것은 단지 영생의 출발점이다. 영생의 비결을 질문했던 청년이 재물이 많기 때문에 근심하며 가버렸다. 영생보다 재물이 우선이었다. 삭개오도 돈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전재산이 아니라 절반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셨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썩을 것들’은 진리이다.

버리는 사람들 2 ‘썩을 것들’은 욕설이 아니라 진리이다. 새들이 배설물을 버려야 날 듯이 성도는 세상 것을 버려야 건강해진다. 배설물인가 아닌가를 분간하게 만드는 것은 썩을 것인가 썩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끌어질 수 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썩을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배설물이고 썩지 않을 것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그것은 보화가 된다. 썩을 것이라는 말은 원래는 새것이었다는 말이다. 새것은 영원히 새 같아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돈이 그렇다. 명예와 명성도 죽으면 다 사라진다. 역사책에 기록되어 칭송을 받아도, 자신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당하고 있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왜 배설물을 쌓는가?

버리는 사람들 1 배설물을 쌓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쌓을수록 명성을 얻고 천국에서는 버릴수록 영광을 얻는다. 천국백성은 끊임없이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버릴 수 있는 것은 소유, 지위, 명예, 돈, 인기, 권력, 자랑 등 끝이 없다. 그 자체는 귀하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땀과 눈물과 인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배설물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8-9) 똑같은 소유, 지위, 명예, 돈, 인기, 권력,..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능력 말고 용서의 힘을 구하라.

용서하는 사람들 5 큰 능력을 구하지 말고 용서의 힘을 구하라 성도의 용서는 회개와 치유와 의와 회복을 일으키는 능력이고 힘이다. 용서가 아니면 주님의 일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증인이 되신다. 용서는 인간관계에 국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뜻이다. 용서가 바로 능력이요 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의 힘인가? 그리스도의 용서의 힘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용서의 힘이었던 것이다. 용서는 힘이요 능력이다. 심지어 우리가 죄를 사하면 하나님도 죄를 사해주신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십자가를 알면 모두 용서한다.

용서하는 사람들 4 정말 십자가를 안다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죽음으로 용서하신 십자가로 돌아가지 못하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작은 상처를 예수님이 고통에 기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정체성이 용서라는데, 용서하고 싶지도 않고 용서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론적으로 그 사람은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써만이 용서를 행할 수 있다. 세상의 평가는 예수쟁이들이 속이 참 좁다고 말한다. 속이 좁다는 말은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과 방향성에서 일치한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우리가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회개는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용서하는 사람들 3 당신의 회개는 당신의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회개가 가능하며 조건 없이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용서가 그리스도의 용서인 까닭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용서받을 때의 전제조건은 회개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 회개보다 먼저 와야 하는 조건이 바로 우리의 용서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의 용서 없이는 모든 종류의 회개는 전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열심히 부르짖고 울부짖으면서 회개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는 한은 그 회개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아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지운다.

용서하는 사람들 2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깨끗이 지운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함은 상처의 노예가 되었음을 뜻한다. 인간의 심리는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상처에 대한 두 가지 태도는 원수 갚음과 용서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더 이상 원수 삼지 말라는 뜻이었다. 구약은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우리의 할 일은 용서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신 32:35)고 주께서 말씀..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십자가를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용서하는 사람들 1 십자가를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와 용서는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이며 신인류 창조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웃사랑도 용서가 생명이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이다. 그것은 새로운 인류가 드러내는 특징이 용서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 용서가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가? 그것은 기독교가 십자가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야말로 새로운 인류탄생의 유일한 통로이다. 새로운 인류의 특징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십자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십자가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한 마디로 말하면 ‘용서’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용서를 통하여 모든 가치를 단 한 번에 실현하셨다. “그리스도..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신인류는 먹구름 위의 태양을 본다.

새로운 인류 5 신인류는 먹구름 위에 빛나는 태양을 본다. 신인류의 미래는 영원한 생명이므로 기존의 인류를 따라 살 수는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미래는 가까워진다. 하나님은 신인류를 어디로 끌어가시는가? 하나님은 새로운 에덴을 창설하려고 하신다. 그런데 왜 세상은 점점 혼돈으로만 가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은 새로운 인류의 최종목적지인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순전한 백성들을 선택하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불합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도록 이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하신다. 물론 불합리와 불공정은 고쳐야 하지만 영원한 천국 말고는 불합리와 불공정이 없는 곳은 없다. 그래서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영원한 나라를 상속으로 주시는 것이다. “이..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나님은 신인류만 통치하신다.

새로운 인류 4 신인류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 받는다. 신인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책임을 지신다. 신인류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어떤 사람을 불러서 새로운 종족으로 만드시는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지만, 부르심 받은 사람이 거듭날 때의 상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분간이 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 못한 사람들이거나 실패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나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심령이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