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돌짝밭과 가시덤불밭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밭에 씨가 뿌려지면 일단 싹이 나지만, 돌짝밭의 경우는 뿌리가 없어서 햇볕이 비칠 때 금방 말라버리고, 가시덤불의 경우에는 싹이 나서 자라지만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 기운을 막아 더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햇볕은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박해를 뜻하고 가시덤불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을 뜻한다고 하셨습니다(막 4:16-19).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그 신앙성장에 장애가 되는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외적인 환경과 내적인 유혹입니다. 신앙이 어느 정도 자라나기 위해서는 외적인 환경으로부터의 보호와 내적인 환경에 대한 인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차적으로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신앙을 보호할 수 있다면 신앙은 곧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꼭 신앙의 성장단계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는 수시로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선택의 여지없이 당해야만 하는 기본 조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실을 기하고 나서 오히려 외적인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외부환경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일시적으로 외적인 환경을 막고 오로지 주님께만 모든 것을 집중해 보는 경험 및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환경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세상의 온갖 소식들에 귀를 막고 하나님께만 한 번 귀를 열어보자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정보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많이 정확하게 가지고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부동산 정보, 투자정보, 여행지 정보, 맛집 정보 등 정보가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정보는 아니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우리 곁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소식들로 날이 저물고 있을 지경입니다.
그런 오고가는 수많은 소식 중에서 참 기쁜 소식, 생명이 되는 소식, 글자로 읽혀지는 하나님의 음성들은 곧 묻혀버리고 말게 됩니다. 때로는 그런 참된 소식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오히려 신앙인들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전혀 불필요하기까지 한 세상의 잡다한 소식들에만 귀를 여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현대 신앙인들의 가장 큰 장애요소라는 것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성도들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들은 매일같이 주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설교를 준비하고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기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잡다한 불빛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불빛은 희미해지는 경우가 또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말씀을 대하지만 차분히 하나님 앞에 앉아서 다른 모든 조건들은 옆으로 밀어놓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가감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은 빛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잔 빛들로 인하여 참된 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면 우리는 다른 불빛들 다 꺼버리고 참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복음은 참 빛이 될 것입니다. 복음 자체는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정한 참 빛이지만 그 참 빛이 세상 속으로 들어올 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반응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다른 불빛 들을 꺼 버리고 복음의 빛만으로 우리 심령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세상소식 끊기는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기도원이나 천주교의 피정 같은 것을 가게 되면 저절로 세상과 끊어지게 됩니다만, 여기 세상소식 끊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 겸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생업이 아니라 방학이라든가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행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기획 의도는 바쁜 삶을 살면서 그 중에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그 기간 동안 머릿속에 항상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게 하는 훈련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일체 떠나 기도원 같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 집중한 것 같았는데 삶 속으로 돌아오니 다시 세상 속에 파묻히게 되는 현상을 탈피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직장인이 이런 훈련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결단하여 이 일에 참여하게 된다면 세상과 싸우면서 자기와도 싸워야 하는 실제적인 신앙상황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기 싸움을 해 나가면 됩니다.
저는 현재 담임목회를 은퇴한 목사라 전체 시간을 여기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하고 인터넷 선을 뽑아버렸고 핸드폰의 와이파이 끄고 데이터도 끊어버렸습니다. 이제 만 4주 후에야 다시 인터넷 연결하고 데이터 연결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중요한 메일을 읽어야 한다거나 날짜가 정해져 있는 은행거래가 필요하다거나 어떤 물건을 꼭 사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잠시 인터넷을 연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직장인이 이 체험을 시도할 때에는 하는 수 없이 인터넷을 열고 작업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각자가 처한 환경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업무 외에는 뉴스를 비롯하여 각종 평론이나 일반적인 사건 사고 소식에까지 아예 눈과 귀를 닫아버린다는 것입니다.
보통 밤에 잠들기 전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나 뉴스를 보면서 잠들고, 깨어나서도 눈을 뜨면 바로 스마트폰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그런 매체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잠시라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하철 안이나 식당 같은 데에서도 잠깐만 시간이 나면 전부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걸을 때에조차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과 부딪칠 뻔한 일을 자주 겪게 되는 세상입니다.
이제 그런 것들을 완전히 끊어보려 합니다. 어떤 변화나 결과가 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마 굉장히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바보가 되는 느낌? 어쩌면 자유함을 맛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두 주는 혼란스러운 상활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일체 끊었을 때 자연스럽게 남게 되는 많은 시간들, 그 시간들 동안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4주 동안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합니다. 일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밭기고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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