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회복 44

아브라함의 자손 (마태복음 3:8)

나만의 마태복음 8 아브라함의 자손 내가 가진 신앙적 연륜이나 지식과 같은 자부심이 나를 망칠 수 있다. (마 3:8)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돌멩이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일에 쓰실 수 있다. 속으로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 이만큼 이루었으니 되었다는 자부심이 크면 위험하다. 오히려 신앙이 깊어지면 더 겸손해지고 자기 죄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힘없는 자, 능력 없는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특히 신앙지도자들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목사라는 타이틀 속에 내가 성도들보다 우월하다, 성도는 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신학을 공부한 내가 해답을 줄 수 있다는 의식이 들..

마귀의 방식 (마태복음 3:7)

나만의 마태복음 6 마귀의 방식 다른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독사의 자식들일 수 있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했다. 오늘날에도 다른 의도를 가지고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다. 그 예배의 본질이 어쨌든 공격할 빌미를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다. 예배에 누군가의 결점을 찾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런 방식은 마귀의 방식이고 그런 방식..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십자가를 알면 모두 용서한다.

용서하는 사람들 4 정말 십자가를 안다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죽음으로 용서하신 십자가로 돌아가지 못하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작은 상처를 예수님이 고통에 기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정체성이 용서라는데, 용서하고 싶지도 않고 용서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론적으로 그 사람은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써만이 용서를 행할 수 있다. 세상의 평가는 예수쟁이들이 속이 참 좁다고 말한다. 속이 좁다는 말은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과 방향성에서 일치한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우리가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회개는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용서하는 사람들 3 당신의 회개는 당신의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회개가 가능하며 조건 없이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용서가 그리스도의 용서인 까닭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용서받을 때의 전제조건은 회개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 회개보다 먼저 와야 하는 조건이 바로 우리의 용서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의 용서 없이는 모든 종류의 회개는 전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열심히 부르짖고 울부짖으면서 회개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는 한은 그 회개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아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지운다.

용서하는 사람들 2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깨끗이 지운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함은 상처의 노예가 되었음을 뜻한다. 인간의 심리는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상처에 대한 두 가지 태도는 원수 갚음과 용서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더 이상 원수 삼지 말라는 뜻이었다. 구약은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우리의 할 일은 용서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신 32:35)고 주께서 말씀..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지 말라는 기도만 골라서 한다.

기도생활 진단 5 하지 말라는 기도만 골라서 한다. 우리가 늘 핵심적으로 기도하는 내용들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아는가? 예수님은 의외로 우리가 기도하지 말아야 할 제목들을 명확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기도하는 것 같다. 예수님은 무의식중에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기도의 방식부터 지적하신다.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간절하게 해도 남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기도라면 하나님은 오히려 벌을 내리신다. 그리고 마치 주문처럼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기도도 안 좋아하신다. 또한 남들에게 거룩하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면 엄중한 벌까지 내리신다. 기도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재물 관계는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아예 듣지도 않으신다. 관직이나 승진에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금식기도는 몸만 망친다.

기도생활 진단 3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금식기도는 몸만 망친다. 금식기도는 자기 성취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기 위해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40일 금식기도하셨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이었다. 기독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상에서든 천국에서든 자기 소원성취가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으신다. 우리를 향한, 또는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얼마든지 복이든 소원이든 이루어주실 수 있으시다. 무슨 큰 비전과 사역을 놓고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40일 금식기도하기 전에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인가를 알기 위해 먼저 40..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총알기도가 아니라 미사일기도를 하자.

기도생활 진단 2 총알기도가 아니라 미사일기도를 하자.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예수님과 성도가, 성도와 성도가 하나 되면 모든 기도는 응답받는다. 기도를 총알에 비유한다면 지금 각자가 방향도 없이 총을 난사해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난사하는 그 총알의 위력을 하나로 합쳐서 마치 미사일을 쏘는 것처럼 정확한 목표를 향하여 발사한다면 목표물은 여지없이 정복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기도는 100% 응답받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그것을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기도(요 17장)는 바로 모든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100% 기도응답을 받으셨다. 그 비결은 하나님과 하나 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예수님과 ..

베드로가 한국에서 부흥회를 한다면

베드로가 한국에서 부흥회를 한다면 오늘의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표를 생각하면서 단순하게 정리해 봅니다. 1. 부흥회가 아니라 오히려 간증집회나 말씀 사경회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워낙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간증거리가 많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믿음의 이야기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2. 기독교인의 특징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미지근한 신앙을 나무랄 것이다. (실수도 많았지만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섬겼고, 행해보지 않으면 자기 신앙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높은 자리, 명성, 영향력을 추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다. (제자들끼리 더 높은 자리를 탐했다가 오히려 책망만 들었기 때문) 4. 항상 하나님 앞에 산다는 생각을 가질 것을 권면하며, 예수님 몰래 ..

만약에 지금 2020.12.12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차라리 잘 못하는 설교를 들으라.

예배진단 5 차라리 잘 못하는 설교를 들으라. 탁월한 설교에는 은혜를 받고 그렇지 못한 설교에는 은혜가 없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좋은 설교를 통해 감동을 받은 예배는 성공하는 예배이고 설교가 엉망이라서 아무런 감동이 없는 예배는 실패하는 예배라는 말인가? 다른 말로 하면 좋은 설교가 있는 예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렇지 못한 예배에는 하나님이 떠나버리신 것인가? 물론 설교자는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에게 주실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설교를 듣는 예배자가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지가 먼저 이야기되어야 한다. 어떤 때는 탁월한 설교가 오히려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설교를 듣는 목적은 그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