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52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말씀을 칼집에 꽂은 채 싸울 수는 없다.

말씀생활 진단 3 말씀을 칼집에 꽂은 채 싸울 수는 없다. 많은 성경 프로그램들은 말씀의 검을 칼집에 꽂은 채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필패로 이어진다. 말씀이란 그 말씀대로 실행해보기 전에는 그 말씀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그러면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 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해하지 못한 말씀은 머리로만 아는 믿음이고 인격적으로 주님과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믿음이다. 아쉽게도 말씀을 교훈으로 받거나 성공의 비결로 삼거나 도덕적인 기준으로 삼거나 자신이 위로받고 치유 받고 격려 받는 수단으로만 삼는 경우가 태반이다. 탁월한 성경 프로그램들이 많이 존재하는 시대이지만 그 말씀을 교훈이 아니라 인격으로 대하여 순종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가 이..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말씀으로 위장하고 계신 예수님

말씀생활 진단 2 예수님은 말씀으로 위장하시고 계신다. 말씀은 단지 예수님의 스피커가 아니다. 말씀은 성도들이 세상과 싸워 이기게 만드는 예수님의 인격이다. 말씀이 나에게 말씀하지 않는다면 아직 제대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말이나 글이나 가르침이나 선포나 전파로만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생명이 없는 말씀이 된다. 말씀을 인격으로 대할 때 나에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말씀 자체가 인격이 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당장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그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살아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말씀은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시내 산에서 말하..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거짓 믿음의 뿌리는 관념적 말씀이다.

말씀생활 진단 1 실천하지 못한 말씀은 거짓 믿음의 뿌리가 된다. 현대 신앙은 아름답지만 뿌리가 잘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꽃꽂이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은 곧 시들어버린다. 기독교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고 찬송도 아니다. 그것은 말씀이어야 한다. 다른 것을 아무리 열심히 잘 해도 말씀이 제대로 세워져 있지 못하면 너무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세상에 뿌려지는 소금이 아니라 녹지 않은 채 자기들만의 소금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있다는 것이다. 말씀이 믿음을 자라게 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온갖 말씀의 잔치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때를 따라 각종 말씀 프로그..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능력 말고 용서의 힘을 구하라.

용서하는 사람들 5 큰 능력을 구하지 말고 용서의 힘을 구하라 성도의 용서는 회개와 치유와 의와 회복을 일으키는 능력이고 힘이다. 용서가 아니면 주님의 일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증인이 되신다. 용서는 인간관계에 국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뜻이다. 용서가 바로 능력이요 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의 힘인가? 그리스도의 용서의 힘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용서의 힘이었던 것이다. 용서는 힘이요 능력이다. 심지어 우리가 죄를 사하면 하나님도 죄를 사해주신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십자가를 알면 모두 용서한다.

용서하는 사람들 4 정말 십자가를 안다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죽음으로 용서하신 십자가로 돌아가지 못하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작은 상처를 예수님이 고통에 기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정체성이 용서라는데, 용서하고 싶지도 않고 용서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론적으로 그 사람은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써만이 용서를 행할 수 있다. 세상의 평가는 예수쟁이들이 속이 참 좁다고 말한다. 속이 좁다는 말은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과 방향성에서 일치한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우리가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회개는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용서하는 사람들 3 당신의 회개는 당신의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회개가 가능하며 조건 없이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용서가 그리스도의 용서인 까닭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용서받을 때의 전제조건은 회개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 회개보다 먼저 와야 하는 조건이 바로 우리의 용서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의 용서 없이는 모든 종류의 회개는 전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열심히 부르짖고 울부짖으면서 회개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는 한은 그 회개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아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지운다.

용서하는 사람들 2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깨끗이 지운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함은 상처의 노예가 되었음을 뜻한다. 인간의 심리는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상처에 대한 두 가지 태도는 원수 갚음과 용서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더 이상 원수 삼지 말라는 뜻이었다. 구약은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우리의 할 일은 용서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신 32:35)고 주께서 말씀..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십자가를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용서하는 사람들 1 십자가를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와 용서는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이며 신인류 창조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웃사랑도 용서가 생명이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이다. 그것은 새로운 인류가 드러내는 특징이 용서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 용서가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가? 그것은 기독교가 십자가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야말로 새로운 인류탄생의 유일한 통로이다. 새로운 인류의 특징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십자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십자가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한 마디로 말하면 ‘용서’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용서를 통하여 모든 가치를 단 한 번에 실현하셨다. “그리스도..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하지 말라는 기도만 골라서 한다.

기도생활 진단 5 하지 말라는 기도만 골라서 한다. 우리가 늘 핵심적으로 기도하는 내용들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아는가? 예수님은 의외로 우리가 기도하지 말아야 할 제목들을 명확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기도하는 것 같다. 예수님은 무의식중에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기도의 방식부터 지적하신다.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간절하게 해도 남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기도라면 하나님은 오히려 벌을 내리신다. 그리고 마치 주문처럼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기도도 안 좋아하신다. 또한 남들에게 거룩하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면 엄중한 벌까지 내리신다. 기도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재물 관계는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아예 듣지도 않으신다. 관직이나 승진에 ..

당신을 깨우는 한마디 : 당신의 삶의 모습을 깨닫고 나서 기도하라.

기도생활 진단 4 당신의 삶의 모습을 깨닫고 나서 기도하라. 자기중심적 기도는 영성이 전혀 자라지 못하게 만들어서 평생 갓난아기 신앙인으로 머물게 할 뿐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성도가 교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삶은 하나님과 거의 관계없으면서 오로지 기도만을 통해서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중심적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왜 다른 통로는 막혀있는데 기도통로만을 생각하고 거기에 몰입하는가? 기도는 자주, 오래 하면 좋은 것이다. 다만 기도와 함께 하나님과의 다른 통로들을 열어두라는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으며 응답도 분명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이 아니라 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